Current Date: 2024년 04월 28일

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

코끝 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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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체를 작은 우주라고 합니다. 지구와 태양, 금성, 화성 등 천체만 우주가 아니라 우리의 몸도 우주입니다. 신체를 이루는 미세한 세포들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면서 우리는 생명활동을 유지합니다. 이 작은 세포들이 간, 심장, 쓸개, 허파, 신장 등 오장육부를 구성해서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해서 살아갑니다. 이 중 어느 한 곳이 아프면 연달아서 다른 장기도 아픔을 느낍니다. 아픔은 즉각 뇌나 다른 세포로 연락이 취해져서 반응합니다.

재미있는 실험을 한 가지 해봅시다.

발가락 끝을 손으로 살짝살짝 건드려 봅시다. 그리고 코끝도 그렇게 반복해서 건드려 봅시다. 그렇게 만지면 만지는 찰나에 우리는 닿음을 인식합니다. 참 신비롭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동시에 건드려 봅시다. 어느 쪽 반응이 빠릅니까? 코끝이 발끝보다 가까우니까 빠를 것 같지요? 빠른 것 같기도 합니다. 신경을 곤두세워서 다시 몇 차례 더 시도해보세요. 어느 쪽이 더 빠릅니까? 차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동시에 반응이 옵니다.

우리의 몸은 이렇게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돼 있는 공동체입니다.

절에서 아침, 저녁에 올리는 예불문에 보면 시방삼세十方三世 제망찰해帝網刹海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뜻은 어느 곳 어느 때나 제망(帝網)의 구슬에 비친 수만큼 많고, 땅과 바다같이 넓은 세계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제망帝網은 하늘나라 제석천의 궁전에 있는 보배구슬로 장엄한 그물-인타라망因陀羅網을 뜻합니다. 인타라망은 <화엄경>에서 평등한 세계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 그물의 매듭마다 투명한 보배구슬이 있어 우주 삼라만상을 휘황찬란하게 비춥니다. 삼라만상이 투영된 구슬들은 또 다른 구슬들을 비춥니다. 이 구슬은 저 구슬을 비추고 저 구슬은 이 구슬을 비춥니다. 동서남북 위아래의 구슬들이 서로서로 비춥니다. 동시에 겹겹이 비추면서 또 비춤을 받아들입니다.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는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이고, 상즉상입相卽相入입니다. 어느 구슬이 먼저이고 중심이라는 개념도 무의미합니다. 꼭 따지려든다면 개개의 구슬이 모두 중심이고 주인입니다. 주인과 종의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주인의 평등한 관계입니다. 상대는 나를 있게 한 주인이고, 나는 상대를 있게 한 주인입니다.

이렇게 주인과 주인이 모여 하나의 우주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중심은 태양도 아니고 지구도 아닌 바로 나요, 우리입니다.

이것이 불교가 세계를 바라보는 눈입니다.

어느 날 아침 발바닥을 꾹꾹 문지르다가 발끝과 코끝을 보았습니다. 문득 <화엄경>에 설해진 장엄한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계가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모두 주인이요, 나의 스승이며, 벗이요, 전생의 어머니요 아버지라는 입장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의지하며 평등한 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살아야 행복합니다. 보기 싫은 사람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만 이웃에 둘 수도 없습니다. 나 자신이 마음을 잘 먹어야 합니다. 인타라망이 출렁이며 소리를 냅니다. 발가락과 코끝이 간질간질합니다.

 [20226241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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