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4월 28일

기고

또 하나의 기적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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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의 골프는 가히 절정기에 들어섰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니다. 20년 가까이 세계정상권에 군림하고 있는 여자골프는 물론, 정상까지 요원하게만 느껴졌던 남자골프도 언제나 정상을 넘볼 수 있는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요즘 젊은 골퍼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큰 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토대를 쌓은 초창기 한국골프를 한번 되돌아보면 요즘 우리나라의 골프는 또 하나의 기적의 사례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연덕춘. 한국 골프사에서 하나의 기적이 있다면, 기적을 이룬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연덕춘일 것이다. 1930년대, 그리고 1940년대는 우리나라로서는 모든 것이 암흑기라고 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그 어려운 시대에 골프를 알고, 배우고, 성공하기까지 식민지 조선인의 여건은 어느 분야나 만만치 않았다.

흔히 알기를 70년대에 육영수 여사의 제안으로 능동 서울칸트리클럽이 변두리로 쫒겨나고 그 자리에 어린이대공원이 들어섰는데, 연덕춘이 10대에 여기서 골프를 접하게 된다. 골프장 근처에 살았던 연덕춘은 친척의 알선으로 골프장에서 로스트볼을 줍거나 허드렛일을 하면서 골프를 알게 된다. 일본 헤드코치에게서 골프채 하나를 얻은 연덕춘은 그 채 하나로 연습을 하면서 골프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재능을 인정받은 연덕춘은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골프수업을 받게 된다. 1934년 연덕춘이 18살 때의 일이다. 가나가와현 후지사와골프클럽에서 당대 일본 최고의 프로골퍼였던 나카무라로부터 본격적인 골프수업을 받은 연덕춘은 1935년 일본 관동골프연맹으로부터 프로자격증을 획득하게 된다. 한국인으로 프로골퍼 1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고 우리나라 골프 역사에 여명이 트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1941년 연덕춘은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회인 일본오픈을 제패하게 되고 손기정에 이어 식민지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다. 이후 연덕춘은 한국 프로골프의 모든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지금도 한국 프로골프협회는 당해년도 최저타수 수상자에게 덕춘상을 시상하고 있다.

남자골프에 연덕춘이 있다면 여자골프는 단연코 구옥희이다. 1956년생이니 연덕춘 선생과는 나이차이가 크지만 구옥희는 한국여자골프의 또 다른 신화이다. 집안이 어려워 골프장 캐디로 골프를 멀찌기서 바라보기만 했던 구옥희는 골프가 자신이 인생을 걸만한 운동이란 걸 직감하고 골프에 몰입하였다.

1978년 처음으로 국내에서 열린 프로테스트를 통과하였고 그해 창설된 첫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구옥희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무대에서 활약하던 구옥희는 우리나라가 온통 올림픽 열기에 빠져있을 때인 1988년 미국 LPGA투어 스탠다드레지스터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하는 등 혁혁한 족적을 남겼다. 박세리가 1998년 미국에 진출하기 꼭 10년 전에 그가 길을 닦아 놓은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에 취해 있던 국내에서는 당시 구옥희의 우승소식을 전하는 매체는 하나도 없었다.

남자 골프에서 연덕춘 다음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골퍼를 꼽는다면 최상호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특유의 뚝심과 열정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생애 69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낸 최상호는 지금도 60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만년 프로골퍼다.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골프를 처음 접한 최상호는 프로테스트에서 계속 고배를 마셨지만 67기 끝에 1977년 프로골퍼가 되고 다음해인 1978년 여주오픈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그 존재를 알리게 된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해 나가면서 오랫동안 국내 1인자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던 최상호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골퍼로 소문나 있다.

어떤 분야든지 선구자는 외롭다. 또 그만큼 힘들다. 연덕춘, 구옥희, 최상호도 그랬을 것이다. 이들이 식민지 조선인으로 체념하고, 단신에 드라이버 거리가 짧아 늘 어려운 경기를 해야했던 한계에 주저앉았다면, 그리고 어려운 여건에도 일본무대를 찾아가 이를 평정하고 벽이 높던 미국무대에서 우승신화를 일궈내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한국 골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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