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7월 15일

라틴아메리카 이야기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향취…아프리카에 대한 재 기억

 
설탕은 단순히 인간의 혀끝을 치장해주던 작물로서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새로운 인종과 문화 창조에 밑거름이 되었다. 15세기 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정복을 통해 백인과 원주민이 만났고,이후 사탕수수를 매개로 흑인과 조우한 라틴아메리카대륙은 유럽과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혼종의 대륙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발전한 라틴아메리카 문화는 다양한 색깔과 향취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한 흡인력을 지닌다. 백인 우월주의에 입각한 식민정책은 지배받은 자로서의 원주민과 흑인의 역사와 문화를 야만시하였다.
 
특히 노예로 아메리카 땅에 강제 이주당한 아프리카계 후손의 역사와 문화적 업적은 공식역사 속에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았다. 아프리카인의 디아스포라가 없었다면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살사와 메렝게, 맘보, 차차차 그리고 삼보와 같은 세계적인 음악과 춤이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1502년을 시작으로 19세기 초까지 수천만의 아프리카인이 노예로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아프리카인들은 아따우데스(Ataúdes) 혹은 뚬베이로스(Tumbeiros)로 불리는 전문 노예사냥꾼에 의해 아메리카로팔려와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식민경제가 확대되던 17세기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패트런적 권위하게 중세 봉건영지와 유사한 하시엔다(Hacienda: 대농장제도)가 발전했다. 하시엔다에서는 흑인 노예가 제공하는 노동력을 바탕으로 사탕수수와 커피 그리고 담배가 재배되었다.
 
새로운 인종과 문화창조에 밑거름
다양한 색깔과 향취…강한 흡인력
백인우월주의 식민정책 아픈 역사
강제이주노예 사탕수수 커피 등 재배
 
노예들에 대한 체벌과 학대는 필수적이었다. 주인은 규율을 어기는 노예의 코와 귀를 자르고 불로 몸에 고문을 가했다. 법이 규정한 노예의 노동시간은 ‘먼 동이 뜨고 해가 질 때까지’였다. 고된 노동과 학대를 견디지 못해 도주한 노예는 노예사냥꾼에게 체포되어 농장으로 끌려와혹독한 매질을 견뎌야 했고, 다른노예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사지가 분해된 채 공중에 매달렸다.
 
주인의 지시를 여겼을 경우 4일간 매일 50대씩의 매질이 가해졌다. 만약 농장으로부터 밖을 벗어나면 도주로 간주하여 2리브라 무게에 해당하는쇠 신발을 착용하고 2달간 매일 100대의 매질을 견뎌야 했다. 하시엔다가 발전함에 따라 식민노예제에 저항하여 도주하는 흑인노예들이 증가했다.
 
도주한 흑인노예를 시마론(Cimarron)이라고 불렀다. 시마론은 “산으로 도망간 황소”라는 의미의 카리브 해 원주민 언어에서 기원되었다. 영어로는 마룬(Maroon)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유명한 흑인 5인조 그룹 “마룬 화이브”라는 명칭이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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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론 지도자 벵코스 비오호
 
시마론은 험준한 계곡과 협곡에마을을 건설하여 식민체제에 저항하였다. 시마론이 건설한 마을을 빨렝께(Palenque:스페인어) 혹은 낄롱부(Quilombo:포르투갈어)라고 불렸다.시마론은 외부세계와의 단절을 선택하고 내부의 통일성과 협력도 강조했다. 
 
그리고 조직적으로 노예들의 도주를 지원하거나 플랜테이션 농장에 직접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여성 시마론은 머리를 따서 그 속에 곡식의 씨앗을 숨겨와 빨렝께의 식량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현재 브라질에는 대략 2,228 낄롱부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낄롱부와 빨렝께는 인근지역과의 접촉을 통한 문화적 변용을 경험하며 아프리카계 후손들의 삶의 터전으로 발전했다.
 
현재 콜롬비아의 산 바실리오 빨렝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시마론 공동체로 알려져 있다.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보존되고 있다. 흑인노예의 저항은 식민정부가 시마론에 대한 가혹한 처벌과 함께 공동체 해체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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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바실리오 빨렝께 전경
 
그러나 빨렝께와 낄롱부의 성장과 활동은 쇠퇴하지 않았다. 17 세기말 그 수는 2배로 증가했고 18세기 확산된 시마론의 저항은 쿠바,브라질, 콜롬비아, 멕시코, 에콰도르, 자메이카 및 수리남 식민정부가 시마론 공동체를 자유지역으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빨렝께와 낄롱부는 아프리카에서 형성된 부족국가의 형태와 유사했으며 중앙집권적인 리더십에 따른 정치체제를 유지했다. 평등사회건설을 지향했지만 군주정치형태 혹은 인척을 중심으로 한 사회체계를 확립하였다. 또한 연령체계를 바탕으로 한 사회조직체를 확립하여공동체의 가치를 통합하고 소속감을 향상시켰다.
 
평등에 입각하여 의식주를 분배하고 사회행동 및 도덕 그리고 노동도 공동으로 분배했다.시마론 마을의 종교는 서로 다른 부족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작용하였다. 전통종교로 자리 잡은 브라질의 깜똠베(Cantómbe) 그리고 카리브 해 지역 보두(Bodu)교 의식을 통해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오릭사(orixa),엑수(exú), 란사(lansa)등의 어휘가 사용되었다.
 
또한 아프리카지역에서 숭배하던 신 마꿈바(Macumba)는 전통종교로 발전하였다. 현재 브라질을포함하여 우루과이 그리고 파라과이 일부지역에서 마꿈바는 미신 및 주술을 의미하는 용어로 변형되어사용되고 있다.
 
전통종교가 손상 없이 원형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었지만 사라지는것은 아니었다. 구전되는 역사와 의례 속에 저장된 전통종교는 삶 속에 깊숙이 스며있어 종교를 일상생활로부터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장례 의식은 매우 아프리카적이며 전통종교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죽음을 통해 산자와 분리되는 고인은 지속적으로 산자와 의 유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간절한 염원이 장례음악 속에 표현되었다. 음악은 노예로서 흑인의 삶과 고통스런 경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동시에 희망과 위안이 되었다.
 
음식에서도 바따빠(vatapá) 아까라헤(acaraje),아바라(abará)와 같은 아프리카 어휘가 보존되었다. 그리고 일상대화에서도 삼바(samba),몰 레 께 (moleque), 모 깜 보(mocambo)등 아프리카 전통이 이어졌다.
 
빨렝께와 낄롱부는 구어전통,춤, 초자연적인 요소와 흑인의 경험과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적인 것들을 재정립하여 흑인의 인종적인 자부심과 공동체적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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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서 노점상을 하는 빨렝께 여인들
 
 백인의 억압으로부터 고통받던 아프리카계 후손들은 빨렝께와 낄롱부라는 공동체에 한정된 공간이지만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려고 노력했고 후손들에게 구전으로 과거를 이어주었다. 문화적 단절 속에서 시마론 공동체가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구전을 통한 재 기억이었다.
 
낄롱부와 빨렝께는 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창조하는 공간이었다.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순수한 아프리카적 전통은 조각나고 흩어졌으나 아프리카계 후손은 공동체를 통해 아메리카 땅으로 유입된 아프리카계 문화를 재창조하였다. 이러한 역사는 라틴아메리카의문화적 풍요의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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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6일 제7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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