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7월 15일

라틴아메리카 이야기

커피 그 한잔에 담긴 라틴아메리카의 달콤쌉싸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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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그윽하게 때론 악마의 음료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강하게 혀끝을 치장하는 커피는 이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않될 일상이 되었다. 커피는 오늘날 석유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교류 상품이다.
 
석유가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윤활제라면 커피는 잠시 밀어두었던 삶의 여유와 마주할 수 있는 촉매제라고나 할까? 라틴아메리카는 세계 커피생산량의 65%를 차지하는 커피대륙이다.
 
18세기 유럽으로부터 유입되어 재배되기 시작한 커피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흐름을 아래로부터 이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492년 컬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들어온 이후 유럽은 세계사의 중심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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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주요 커피재배 지역>
 
그리고 ‘라틴’과 ‘아메리카’의 만남을 통해 시작된 역사와 문화는 유럽이 중심에서 있는 위계화 된 서열구조로 부터 기록되었다. ‘글을 아는 백인 남성’에 의해 기록되어 경전처럼 전해진 2만여년의 원주민의 업적은 그저 ‘서구 근대’에 의해 통치되어야 할 미개한 과거에 불과했다.
 
그동안 필자는 라틴아메리카의 식민도시와 원주민 도시를 통해 세계지역과 역사에 대한 우리의 편파적이고 왜곡된 지식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사회가 서구의 선물을 통해 근대성을 받아들였다는 서구 중심주의가 얼마나 편향적으로 세계를 인식하게 했는가에 대해 물었다.

이번에는 커피와 설탕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지역으로 유입된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도시공간을 통해 원주민과 백인의 만남 그리고 파괴와 공존의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혼종성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설탕과 커피를 매개로 라틴아메리카의 검은 문화 유입과 정착에 대해 재평가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번 호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커피 유입의 역사를 살펴보고, 다음 호에서 커피와 설탕을 통해 시작된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역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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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데스산맥 커피 재배지>
 
14세기 말 인간의 지적 욕구도 권위에 복종해야 했던 시대가 저물고 유럽에서는 엘리트를 중심으로 문예부흥운동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재발견보다는 혀끝을 만족시키는 기호식품에 관심을 기울였다.
 
설탕, 커피, 초콜릿, 차, 향신료와 같은 미각을 자극하는 식품은 실크로드를 통해 베네치아나 제노바에 도착하여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15세기 말 컬럼버스 항해 이후 아메리카는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광할한 면적의 아메리카 영토를 차지했고 영국은 카리브 해 지역에서 가장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도 식민건설에 동참했다. 그리고 미각을 탐하던 유럽인들의 욕구는 카리브해와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세계 미각자본주의 중심지로 변모시켰다. 커피와 설탕은 권력을 상징했다. 스페인의 식민정복사업에 동원된 원주민은 멸절되어 갔고,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16세기 라틴아메리카에는 흑인 노예제가 도입되었다.
 
 <차경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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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계기로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상품으로 거래되어 아메리카에 정착했다. 그리고 16세기를 시작으로 2백년 동안 1,1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이 노예로 거래되었다. 아프리카인의 이산의 고통을 통해 아메리카에는 또 다른 역사와 문화가 잉태되었다. 물라토와 삼보라고 불리는 새로운 라틴아메리카인이 탄생되었고, 아프리카의 뿌리를 둔 문화는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자산이 되었다.
 
커피는 14세기 에디오피아의 한 양치기소년 칼디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소년으로 부터 빨간 열매를 건네받은 마을 족장은 떡으로 만들어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비상식량으로 제공하였다.
 
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이슬람 세력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아프리카 까지 영토를 팽창하였고이러한 과정에서 빨간 열매는 이슬람세계에 소개되었다. 15세기 중동부근으로 확산된 커피는 성 주간 잠을 견뎌야 했던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신비의 묘약이었다. 성직자들은 열매를 볶아 갈아서 음료수로 마셨고 이것을 활력제를 의미하는 “카와”라로 불렀다.
 
커피의 어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터키를 거쳐 17세기 유럽으로 확산된 커피는 영국 왕실을 변화시켰고 인간의 기질을 변모시켰다.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블)에서 세계 최초의 커피 하우스가 등장한 이후 1645년 베니스, 1652년 런던, 그리고 1671년 프랑스 마르세이유와 독일 함부르크 등 유럽 각지에서 커피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커피 하우스는 지식인들의 사교 및 지적교류 뿐만 아니라 정치를 논하는 현실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체제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증가함에 따라 영국 왕실은 커피 하우스 폐쇄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것은 지식인의 반발과 함께 커피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커피재배지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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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독일에서는 커피가 도입된 이후 지주와 프로테스탄트간의 오랜 갈등이 지속되었다. 커피는 지주에게 황금알을 낳은 거위였으며, 프로테스탄트에게 커피는 이슬람 이교도로부터 유입된 악마의 음료였던 것이다.
 
17세기 영국을 통해 아메리카에 소개된 커피는 자메이카, 수리남 등 카리브 해 지역 영국과 네덜란드령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8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라틴아메리카로 확산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커피는 국내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또한 커피로 인해 국가의 암운이 드리워지기도 했다.

과테말라의 안티구아, 코스타리카의 타라수, 온두라스의 파라이소, 브라질의 산토스 루비, 페루의 친차마요, 콜롬비아의 수프리모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산되는 주요 커피는 생산지의 지명을 바탕으로 상품화되었다.
 
맛과 향이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콜롬비아의 수프리모는 진하고 부드러운향을 선사하며 무기질이 풍부한 화산토에서 생산되는 과테말라의 안티구아와 코스타리카의 타라수 커피는 신맛이 강하여 에스프레소용으로 사랑받고 있다.
 
커피재배지의 팽창은 인구의 증가와 이동, 새로운 마을과 도시 형성 등 사회문화적 변동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 커피는 대농장에서 원주민과 흑인 노예의 노동력으로 재배되었다. 커피로 생활이 윤택해진 백인 지주들은 자신의 일상 속에 유럽을 끌어들이기 시작했 다.
 
<커피 재배지 전통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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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에서 탄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식민 모국스페인으로부터 서자 취급을 받아왔던 이들은 거리 곳곳에 등장한 유럽풍의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즐기며 유럽인의 삶을 모방
하였다. 또한 지주들은 농장에서 일하는 농민들에게 하얀 와이셔츠와 하얀 레이스의 넓은 치마를 작업복으로 입혔다.
 
커피재배지 농민의 작업복은 하얀 와이셔츠로 정착되었고 주요 커피재배지의 전통복장은 흰블라우스의 폭넓은 치마로 발전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20151224일 제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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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미 교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anacha@b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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