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7월 15일

라틴아메리카 이야기

파괴와 충돌 공존의 역사가 거리 곳곳에

 
차경미 교수의 라틴아메리카이야기<2> 라틴아메리카의 도시
 
 
33.jpg라틴아메리카 지역 국가의 도시는 매우 획일화된 특징을 유지한다. 멕시코에서부터 아르헨티나까지 그리고 대도시에서 중소 도시까지 모든 도시는 마치 대량상품으로 생산된 듯 그 외적 형태가 유사하다. 도시는 격자형으로 질서정연하게 정비되었으며 도시 중심에는 광장이 위치한다. 광장주변에는성당과 대통령궁 및 법원 등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공적인 건물들이 웅장함을 과시한다.
 
또한 코르도바 (Cordoba), 투루히요(Trujillo), 발렌시아(Valecia), 메리다(Mérida)와 같은 스페인의 지명이 라틴아메리카 도시명에서도 사용되며 스페인 군주의 이름 혹은 카톨릭 성인의 이름도 도시명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도시는 언제부터 이렇게 유사성을 유지하며 발전했을까? 15세기말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 거대한 면적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식민지 건설은 일정하고 질서정연한 도시계획에 의해 실현되었다. 도시계획은 중세유럽의 격자형 도시를 식민지에 이식하는 것이었다.
 
정복자들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장소를 파괴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공간적 재편을 통해 200년 동안 유럽풍의 중세도시를 건설하였다. 수탈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식민권력은 원주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모든 권력이 집중된 원주민 중심지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식민권력의 거점지로서 새롭게 기능하도록 도시를 재건하였다.‘문명'이라는 이름하에 도시계획법에 따라 바로크풍의 근대도시가 획일적으로 건설되었으며 그 결과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까지 라틴아메리카의 도시는 현재까지도 유사한 외형을 유지하며 발전하였다.
 
스페인 정복의 의한 ‘아메리카’와 ‘라틴’의 조합의 역사는 전통과 근대의 충돌이었으며 동시에 “무질서”하고“불결한”원주민에 대한 문명통치 과정이었다. 정복자들은 원주민사회를“악마와 무질서로 가득 찬 늪”으로 묘사하였으며 원주민은“게으르고, 무모하고, 제멋대로며 뻔뻔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들”로 기록했다.
 
정복자에게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건설은 ‘서구에 의해 문명화되어야 할 공간’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구문명의 우월성 및 보편성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서구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사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에서 도시는 서구문명과 식민권력의 우월성이 가시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원주민 문명의 중심지였던 멕시코와 페루의 역사적 공간은 가장 혹독한 파괴의 역사를 경험했다. 동시에 더욱 웅장하고 거대한 유럽풍의 건축물로 채워진 도시로 성장하였다. 식민시기 문화, 상업, 행정의 중심지인 아메 리 카 최 대 번 영 도 시 테 노 치 티 틀 란(Tenochititlán: 현재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옛 이름) 아즈텍 궁전위에는 3마일 면적에 해당하는 새로운 광장이 건설되었다. 광장은 도시의 공간구조 중 가장 특징적인 곳으로서 교회, 세관, 법원, 시청, 경찰서등 질서유지를 위한 건물이 우선적으로 배치되었다. 성당을 포함하여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왕궁과 웅대하고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그 외형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도시에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기술과 건축은 문명으로 간주되었다. 식민권력은 라틴아메리카 도시의 역사적인 공간을 파괴해 나갔고, 새로운 상징적 공간 창출에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투입했다. 도시공간은 토착문화와는 전혀 관계없이이식된 식민지배 문화로서 건축양식은 가시적으로 과시 될 수 있도록 장식되었다. 도시 경관은 왜곡된 경외감을 가지게 했으며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규율이 적용되었다. 원주민은 새로운 삶의 방식이 도입된 도시공간으로부터 급속히 멀어져 갔다.
 
12세기경 건설된 해발 3400미터에 위치한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Cuzco)는 16세기 라틴아메리카의 파괴와 충돌 그리고 공존의 역사가 거리 곳곳에 기록처럼 저장되어 있다. 거리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유럽의 자태로 웅장함을 과시한다. 화려하게장식된 바로크풍의 성당 이 중심에 위치하며 그 내부에는 둥굴고 넓적한 원주민 형상의 성모마리아와 예수가 지키고 있다.

 
이질적이며 복합적 혼성적인 역사의 기록 질서정연한 격자형 기념비적 건출물 광장
 
수도원으로 재건된 코리칸차(Coricancha) 태양의 신전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인간과 신의 교감을 통해 공간적 조화를 이루었던 잉카의 모습을 품은 채 유럽을 모방하여 세워진 기념비적인 건축물속에 흔적으로 남아 아픈 과거를 겸손하게 드러낸다. 토착문화와 관계없는 식민의 역사를 통해 이식된 화려한 석조물에 갇힌 신전 내부는 놀랍도록 정교한 잉카인의 벽돌이 지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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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원으로 재건된 코르킨차 신전
 
벽면 한쪽에는 조상의 세계관을 온전히 복원 할 수 없었던 현대후손들에 의해 잉카인의 세계관이 암호로 새겨져 있는 황금판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강렬하고 섬세한 태양빛과 충돌하여 어우러져 있다. 16세기 로마의 전통과 르네상스의 이상 도시론을 바탕으로 수립된 라틴아메리카의 도시는 질서정연한 격자형의 외형과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채워진 광장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지금도 대부분의 도시는 그 기본 형태를 지닌 채 유사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도시건축물은 이식된 식민지배 문화로서 도시는 이질적이며 복합적이고 혼성적인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와 역사가 그대로 저장되어 있는 기록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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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시티 중앙광장 소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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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루 쿠수코 아르마스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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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6일 제6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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