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7월 15일

라틴아메리카 이야기

탱고이야기: 어둠 속에 태어난 세계적인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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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환상의 세계를 뒤섞어 놓은 작품들로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세계의 영역을 확장한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는 “탱고의 에로틱한 유희를 한 껍질 벗기면 그 속에 감춰있던 아르헨티나인들의 가치관과 명예를 지켜내는 용감함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고 말한다.
 
낡은 식민의 역사가 기록처럼 저장되어 숨 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서 탱고와 마주하게 되면, 순간 잔뜩 멋을 부리고 그 속에 빠져들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아르헨티나 여행에서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보까(Boca) 항구에 어둠이 낮게 깔리면 알록달록한 색으로 맘껏 치장한 까미니또(Caminito) 거리의 판자촌은 반도네온의 애절한 음색과 현란한 스텝속에 빛바랜 과거를 어제처럼 되돌려놓는다.

여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항구에 빼곡히 들어선 선술집은 춤을 연마해 겨루는 ‘마초(Macho)’들의 거칠고 빠른 몸동작으로 분주했다. 고단한 삶을 이겨내야 했던 이방인들은 까미니또의 밤거리에서 휴식을 얻었고, 탱고는 그 거리에서 생명을 얻었다.

탱고와 에비타(Maria Eva Duartede Perón)의 포퓰리즘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보까 부둣가에서 시작되고 번성했다. 탱고는 부둣가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고 발전했으며 ‘돈크라이 포미 아르헨티나’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에비타의 정치적 신념도 노동자와 함께 성장하였다.

거친 환락가에서 태어나 우아한 격식을 갖춘 예술로 변모한 탱고는 상처로 얼룩진 성장기를 거쳐 수많은 추문 속에 최고 권력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에비타의 삶과 색을 같이하고 있는 듯하다.

2차 세계대전으로 세상은 암울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람들의 심장은 얼어붙었고 더 이상 사람들은 탱고에 열광하지 않았다. 더욱이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 금지라는 이유로 탱고 모임이나 밀롱가를 철저하게 폐쇄시켰다. 그리고 암울한 시대에 저항했던 예술인들은 무대보다 감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46년 노동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페론정권이 등장하였다. 페론(Juan Domingo Perón)과 그의 아내이자 정치적 동반자인 에비타는 친 노동정책을 통해 정치가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론과 에비타는 여전히 노동자들에게는 돌아라가고 싶은 좋았던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에비타와 페론의 포플리즘 정권은 민족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민중문화를 육성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군부에 의해 탄압 되었던 탱고가 장려되고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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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델의 음반과 그의 집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수퍼스타로 꼽히는 두 뮤지션, 가르델(Carlos Gardel)과 삐아졸라(Astro Piazola)는 탱고 암흑기에 탱고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발전시켰다. 혹독한 추위와 어둠은 세계적인 탱고 뮤지션이 잉태되는 출산의 시간이 된셈이다.

두 뮤지션에 의해 색이 다른 수많은 탱고 명곡이 만들어 졌다. 탱고는 더 이상 아르헨티나 부두 노동자의 감성에만 머물지 않았다. 탱고는 가르델과 삐아졸라에 의해 전설이 되었고, 그들은 탱고에 의해 전설이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는 산 뗄모(San Telmo)이다. 산 뗄모는 보까와 더불어 길거리에서 탱고 댄서들을 쉽게 만날 수있는 곳이다. 이 거리는 탱고 암흑기에도 현대미술관 개장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탱고 뮤지션들과 댄서들로 촘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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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뗄모 거리
 
 
박물관으로 개조된 가르델의 생가는 아르헨티나 중산층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준다. 넘치지는 않지만 부족할 것도 없던 생활이 바리톤 가수로 꿈을 키워온 가르델의 좌절과 탱고 가수로 변신한 그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가르델의 통역 겸 반주자로 한때 그를 쫓아다녔던 삐아졸라는 반도네온 연주자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는 매번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낙심한 삐아졸라는 탱고를 벗어나 클래식 음악연주에 전념했다.

그는 전자 기타를 탱고 밴드에 포함시키는 실험을 시도했다. 그리고 재즈와 클래식에 이르는 폭 넓은 음악적 이해를 바탕으로 탱고를 재해석하였다. 그 결과 ‘누에보 탱고’ 가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아르헨티나 탱고를 토대로 스트라빈스키와 바르토크 음악에 영감을 얻어 삐아졸라는 미국의 재즈를 접목시켰다. 피아졸라의 음악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아르헨티나 탱고는 세계 주류 음악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둠속에서 오히려 탱고는 세계적인 음악으로재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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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15일 제7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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