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3월 29일

레저/여행

“마셜제도의 눈물젖은 코코넛 "

한국인 희생자 추모비.jpg한국인 희생자 추모비 스토리.jpg


“자 우리 묵념합시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얼마나 배고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때는 바야흐로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세계 2차 대전의 시작점으로 돌아간다. 그 후 2년이 지나 41년 12월 8일 일본군이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로 식민지하에 있을 때다.
 

많은 젊은 남성들이 세계 2차 대전에 강제로 징용이 되었다. 집안에 젊은 남자라면 가리지않고 잡아가던 시대였다. 파푸아 뉴기니는 4,000명, 마셜아일랜드 300명 등 그 중에 모든 병사들이 몰살당한 마셜아일랜드. 바로 그곳에 희생당한 한국인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이곳에 있었다. 마셜아일랜드의 차량 정비소 그 구석에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안 된다 이놈들! 우리 아들은 안 된다! 병수야! 병수야!!”
“뭣들하고 있어 데려가!”
일본 순사들이 동네마다 트럭으로 돌면서 17~40세 남성들을 마구잡이로 태우고 있었다. 동네는 삽시간에 통곡소리와 비명소리로 채워졌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순사들은 눈길한번 주지 않고 말을 안 들으면 곤봉을 휘두르며 차에 태웠다.
“어머니! 저 꼭 살아서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식사 잘 챙겨 드시고 계세요. 한열아! 어머니 잘 부탁한다.
형 꼭 돌아올게”
“제발 부탁드립니다. 우리 병수가 없으면 우리 가족 다 죽어요! 제발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거 놔라! 더러운 손 치우지 못해!”
퍽!
“제가 갈 테니 어머니에게는 손대지말아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에 가장노릇을 했던 병수는 바짓가랑이를 잡는 어머니에게 발길질을 하는 순사를 말리며 서둘러 차에 올랐다. 황망한 표정으로 병수가 탄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어머니는 미어지는 가슴을 붙들며 오열했다.
“우리 병수! 우리병수 어쩌누!”
마치 짐짝처럼 트럭 뒤에 실린 남자들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치욕, 분노, 걱정,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만 가득한 트럭은 너무나도 빨리 부산항에 도착했다.
“빨리 내려! 저 배에 탑승한다!”

전쟁물자와 철근 콘크리트 등이 실려 있고 이미 안에는 많은 이들이 실려있는 배였다. 끼이익 끼익 끼익 녹슨 철의 소리가 귀를 찢는 듯 기분 나쁘게 들려왔지만 배에 타있는 사람들은 인상만 조금 구길 뿐 누구도 입을 열지않았다. 전쟁을 위한 것들을 태운 군함은 출발했고 무려 2달에 걸쳐 도착한 곳은 마샬 군도라는 곳이었다. 도착한 시간은 새벽 동이 틀 무렵이었지만 덥고 습한 한여름 같은 날씨에 한국군들은 먼 타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려라! 지낼 곳은 직접 짓도록 한다. 여기는 전쟁터다. 명령불복종은 즉각 참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찬 이슬 맞으면서 자고 싶지 않으면 서둘러야한다! 1시간 뒤에 아침식사를주도록 하겠다”
이제는 일본군에 함께 편성된 한국군들은 도착하자마자 왜 그래야하는지도 모른 채 본인들이 머물러야 할 곳을 직접 만들어야 했다. 일본군함에 사람들이 실려 오는 모습을 구경하는 현지사람들이 보였다. 태어나 처음 보는 피부색의 사람들과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다들 비대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찢어질 듯 배가 고플 때, 일본군은 식량이라며 나무를 끓인 것 같은 음식을 주었다. ‘카사바’라는 음식이었는데, 한국의 고구마와 비슷했는데 그 크기가 훨씬 컸다. 카사바를 한입 베어 물고 오물거리는 순간 입에 퍼지는 담백한 단맛을 느끼며 병수는 실감했다.
‘내가 정말 멀리 왔구나.. 그리고 못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아씨 이거 왜 이렇게 퍽퍽해”

훌쩍 눈물을 흘리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병수는 일부러 입으로 불평하며 카사바를 먹었다. 그 시각 미국 체스터 미니츠 제독과 참모들은 미드웨이 해전에 승리로 승기를 잡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어 군사회의가 한창이었다.
‘비열한 일본군이 각 섬마다 진을 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제독! 마셜군도는 포탑이나 요새가보이지 않습니다.”
“일본군이 섬에 들어간 건 확실한데, 탑이나 요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군!
“정보부에서 이르기를 일본함대가 태평양 각 섬에 잠깐잠깐 정박했었다고 합니다.”
“섬 주변을 경계하고 보급선만 차단시키면 알아서 자멸할 것이다. 마셜제도 공격은 보류한다.”
“충성!”
진지구축 중 초소 취사장에서 한국인 병사 한명이 일본 군인에게 물었다.
“왜 점점 보급이 줄어드는 건가요?”

분명 큰 목소리는 아니었음에도 모두의 시선이 일본 군인에게 향했다. 모두가 얼마나 예민하고 배가고픈지 알 수 있는 이유였다.
“보급선이 곧 올 것이니 그때까지만 참아라.”
자신들도 보급이 줄어 있는 것을 아껴 먹고 있는데 이런 질문이 오자 난감했다. 실제로 섬에는 지금 식량이 부족해져가고 있었다. 사고야자나무 속껍질을 잘게 벗겨 거름망에 넣고 물을 부어 녹말만 제거하면 떡처럼 만들어 중요한 탄수화물이 되기에 그렇게 식량을 얻어가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한계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만 벌써 4개월째입니다.
정말 너무 배가고프고 힘이 듭니다.”
“닥쳐라. 보급이 오면 말해 줄 테니 오후 작업 출발해라”
씹어 넘기면 소화가 빨리 될까봐 최소한으로 씹고 그냥 삼키던 병사들은 배고픔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작업장으로 출발했다.


마셜제도의 만행.jpg 마셜제도 일제의 만행.jpg

그날 저녁 부스럭 너무 배가 고팠던 병사들 중 2명이 코코넛 나무에 올라 아직 익지도 않은 코코넛을 따서 내려왔다. 코코넛은 익지 않으면 떫은맛이 심해 먹기도 힘들뿐더러 먹는다고 해도 안에 코코넛기름이 굳지 않아 배를 채우는 데는 도움이 크게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배고픔에 눈이 돌아간 한국군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조센징! 그거 이리 내놔라!”
그 때 일본군이 나타났고 그들에게는 저승사자의 목소리보다 더 무섭게 들렸다. 코코넛을 일본 간수 앞에 내려다 놓으려 고개를 숙이는데 머리위로 곤봉이 떨어졌다.
아악!
뒤통수에 맞은 곤봉에 한 한국병사가 쓰러졌고 나머지 둘이 상태를 확인 하려는데 발길질이 날아왔다. 한동안 손과 발을 쉬지 않고 구타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닥쳐라!”
처참한 몰골로 곤봉에 맞아 기절한 병사를 업어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병수야!”
“일어나봐 병수야!
“괜찮나?”
그때 주섬주섬 병수가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냈다. 모두가 숨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사진하나 없어, 자신이 직접그린 어머니의 사진.
“어. 어머니. 저 못 돌아갈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또르륵
누워서 눈매를 타고 흐르는 눈물이 귀를 적시고 바닥에 떨어졌다. 한 방울 두방울 세 방울,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을 때 쯤 병수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숨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병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내무반 앞 공터로 나왔다. 손에는 작업에 사용하던 낫과 삽을 가지고 있었다.
“가자”
그들은 오오삼삼 흩어졌다.
“나카무라 소령님, 미국항공모함이 우리 제국 앞에 진을 치고 있어, 보급이앞으로 더 늦어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한국 병사들의 불만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내버려두면 반란이라도 일으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치로 중사 결정은 내가하네 자네는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
강압적인 나카무라 소령의 말에 쇼타 상사가 거들었다.
“그따위 한국놈들 100명이 덤벼도 죽여 버리면 되는데 무얼 걱정하시오 이치로 중사, 식량이 부족하면 한국 놈들을 바다위에 송전탑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위험한 작업을 보내 수를 줄여갑시다. 내 이치로 중사의 말 충분히 이해하오”
“예. 저는 잠시 화장실좀 다녀오겠습니다.”

답답해진 이치로 중사가 바닷가에서 사색에 잠긴지 1시간쯤 지났을 때, 스스슥 막사에서 느껴지는 조심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와아 아아아
한국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막부로 들어갔고
탕탕
두어 번 들리던 총성도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치로 놈이 보이지 않는다. 그를 찾아야한다”
조용히 바닷물로 스며든 그는 멀리 보이는 섬으로 헤엄쳐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요한 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태양이 뜨겁게 내려쬐고 있었다. 구명보트에 10명씩 30개의 보트가 섬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한국인들은 지도자를 선별해 그들과의 대화를 하기위해 뭍에서기다렸다. 그때
탕!
한국군의 지도자가 그의 가슴과 등으로 빨간 물이 번져가기 시작했고 이내 무릎 꿇은 그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고개를 다 못 돌린 그의 얼굴 옆면으로 웃는 표정이 보였다. 스르륵 허물어져가는 그를 보며 한국군은 숨도 쉬지 않고 있었다. 그 고요를 깬 것은 뭍에 도착해 내리기시작한 일본군이었다.
“다 죽여라!”
어느새 뭍에 닿아 배에서 내리기 시작한 일본군 중 중앙 보트에 있던 자가 소리치자
와아 아아아~!!! 탕탕 피융
지옥도가 펼쳐졌다. 뒤돌아 도망가기 시작한 한국군과 그들을 쫓아 총살하는 일본인. 걸려 넘어진 한국 군인에게는 두 명 세 명의 일본군이 달려들어 총검을 쑤셨다.
“총알도 아깝다.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으아, 아아악
“모두 도망쳐”
하루아침에 생판 모르는 국가에 끌려와 4년 동안 노예처럼 일한 300명에 이르는 한국인 병사들이 모두 몰살당했다. 그 배고픈 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다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시체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한 그분들을 생각하니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이 있었는지를 가슴으로 세었다. 잊혀진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이들의 헌신과 희생이 지금의 우리가 있게 했음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도용복.jpg





 



[20201228일 제1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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