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3월 29일

레저/여행

파랑새를 찾아 도시로 떠난 그들이 다시 찾는 곳

 

01.jpg 08.jpg

ㄱ자 흙집 안마당에 가을햇살이 뿍 내려앉았다. 처마 밑에서 누렁이가 졸고 있고 이 집 안주인은 마당에 오카(고구마와 감자의 중간맛이 나는 식물로 이들의 주식)를 널어 말린다. 흙벽돌담 사이 삽짝문을 나서면 담을 따라 두 사람이 겨우 비껴 지나갈 수 있는 고샅길이 이어진다.

오른쪽 고샅길은 동네로 이어지고 왼쪽 고샅을 따라 열두어 발걸음을 옮기면 통시(화장실)가 나온다. 흙벽돌로 지은 한평 될까 말까한 정방형 통시의 문은 거적때기를 걸쳐놓았고 지붕은 산에서 벤 풀을 지은 초가다.

통시 속 널빤지 두 개가 구덩이 위에 적당한 간격으로 놓였고 손이 닿는 벽에는 헌 신문지를 꽂은 구부린 철사가 눈에 띈다. 그 옆 돌담 우리엔 사람발자국 소리를 듣고 돼지들이 밥을 달라고 꿀꿀거린다. 삽짝밖 고샅 아래 계단 밭에서는 옥수수가 가을 바람결에 서걱서걱 소리를 내고, 그 아래로 앞집 초가지붕이 보인다. 그 너머는 파란 호수가 끝간데 없이 펼쳐졌고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 위엔 흰구름 한점이유유자적하고 있다.

02.jpg 03.jpg 04.jpg 05.jpg

이 풍경은 어릴 적 우리네 시골 모습이 아니다. 지구 반대편 남아메리카 페루땅, 정수리에 하얀 만년설을 인 고봉들이 남미대륙 서쪽에 종단으로 늘어선 안데스 산맥 한복판, 눈 녹은 물이 고인 티티카카 호수 위에 봉긋이 떠 있는 아만타니섬 산비탈에 옹기종기 붙어사는 캐추아족 인디오 마을, 카라마마니집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봄이 흐드러진 이맘때 이곳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된다. 하지만 그들의 동네풍경이나 집, 그리고 사는 모습은 우리네 어릴적 시골모습을 꼭 빼닮았다. 동네 풍경뿐이 아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 모두가 어디서 본 듯한 우리 이웃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 땅에 정착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 옛날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 베링해협이 육지로 이어졌을 때 몽골리안들이 북미대륙을 거쳐 이곳 남미까지 내려왔는지, 혹은 빼어난 항해술로 태평양을 건너왔는지....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한 핏줄인 것은 틀림없다. 인디오와 어린아이 엉덩이엔 시퍼런 몽고반점이 도장을 박은 듯이 선명하다.

안데스 산맥속의 티티카카는 수면의 높이가 해발 3천8백12m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데 위치한 호수, 그 넓이가 자그마치 충청남도만 해서 바다와 진배없다. 이 호수에 처음 온 나그네는 배를 탔다 하면 머리가 아프고 구토 증세를 일으킨다. 이것은 배 멀미가 아니고 바로 고산병 증세다.

11.jpg 12.jpg


남미대륙 서쪽 종단 아만타니섬 산비탈마을
몽고반점 뚜렷한 인디오 2백여가구 전통생활
원시문화 그대로, 자급자족 하지만 여유로운 곳


13.jpg 14.jpg

호수변의 소읍 푸노까지 나가려면 네 시간 배를 타야 하는 외딴 섬 아만타니에는 2백여 가구의 인디오들이 문명을 등진채 아도베라는 흙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의식주를 간단하게 해결한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산비탈 밭뙈기에서 옥수수, 감자, 오카를 심어 먹고, 양을 키워 털을 뽑아 옷을 해 입으면 끝이다.

마당에서 오카를 말리고 있는 카라마마니 여인은 40년 전 어느 날 밤을 잊지 못한다. 17세 칼신카리는 달빛이 파랗게 물든 밤 티티카카 호수가에서 꽃다운 열여섯살 카라마마니의 두 손을 잡고 “성공하면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훌쩍 아만타니 섬을 떠나 버렸다.

카라마마니는 그 약속을 가슴에 안고 하염없이 티티카카 호수만 바라봤지만 칼신카리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일이면 오겠지 하며 언덕에서 내려오기를 9년, 그렇게도 기다리던 칼신카리가 나타났다. 고향섬 아만타니 섬을 떠난 칼신카리는 성공해 보겠다고 훌리아카로, 아레키파로, 리마로 떠돌며 온갖 고생을 했지만 성공은 커녕, 제 한 몸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다.

성공이 무슨 대수냐, 돌아온 것만 반가워 카라마마니는 칼신카리의 품에 안겨 가슴을 적셨다. 파랑새를 잡으러 도시를 떠돌던 칼신카리도 제 살 곳은 고향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카라마마니와 살림을 차린다.

17.jpg 18.jpg

그리고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카라마마니는 슬하에 3남3녀를 두었다. 제 애비를 닮았는지 아들 딸들은 고향을 떠나 모두 도시로 나갔다. 리마로, 훌리아카로, 푸노로... 장남은 리마에서 카펫 직공으로 일하며 2남1녀를두었다. 4년 전 아들 내외가 단칸 셋방살이하는 것이 안쓰러웠던 카라마마니는 남편의 등을 떠밀어 리마로 보냈고, 남편은 변두리 땅에 흙벽돌집을 지어주고 돌아왔다.

맏아들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 저 살기에도 빠듯해 추수를 하면 오히려 엄마가 아들에게 돈 될 만한 것을 부쳐주지만, 점원으로 공원으로 일하는 미혼의 아들딸들은 가끔씩 몇푼의 돈을 집으로 부쳐준다며 카라마마니는 빙긋이 웃는다. 훌리아카의 식당에서 일하던 셋째 딸 세라피나가 이제 고향집으로 돌아와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이 고마워 카라마마니는 또다시 웃는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또한 우리네 시골집과 그렇게 똑같을 수가 없다.

사진설명 01 : 티티카카 호수의 아만타니 섬 구멍 가게에도 코카콜라가 있다.02 : 칼신카리의 딸 세라피나는 도시 객지를 떠돌다 이제 집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거든다. 부엌에서 저녁 준비에 여념이 없다. 03 : 타킬레 섬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티티카카 호수 수평선 위에 볼리비아 땅이 아스라이 보인다. 04 : 티티카카 호수의 갈대를 베어 단으로 묶고 또 단을 서로 엮어 인공섬을 만든 뒤 그 위에서 갈대집을 짓고 갈대배를 만들어 고기를 잡는 우루스 섬의 인디오들. 그들은 왜 넓은 땅을 두고 호수 위세서 살까? 티티카카 호수면은 해발 3천8백12m로 배를 타고도 고산병에 시달린다. 05 : 잉카 이전에 번성했던 추라혼 문화유적 시유스타니 석탑묘. 왕이나 토호의 무덤으로 추정된다.06 : 티티카카 호수에서 잡은 작은 물고기 아스피와 작은 고구마 같은 오카를 쪄서 보자기에 들고 다니다 점심을 떼우는 아만타니 섬 처녀들. 이 음식은 전분과 단백질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균형식이다. 07 : 갈신카리는 돈을 벌어 오겠다고 오만군데를 쏘다니다 빈 손으로 고향에 돌아와 농사꾼이 되었다. 08 : 타킬레 섬 여인들이 배를 타고 푸노에 와서 장터에 앉아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사먹고 있다. 09 : 타킬레 섬의 3형제는 아버지, 형들과 함께 자기네 집을 지을 동안 학교에 가지 않는다. 10 : 티티카카 호수변의 푸노. 이곳의 중심은 아르마스 광장이다. 11 : 푸노의 장날. 아만타니 섬 주민들이 배를 타고 장보러 온다. 12 : 아만타니 섬의 중앙광장. 한달에 한번씩 전 주민이 이곳에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토론한다.


도용복.jpg










[2020224일 제12112]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