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3월 28일

레저/여행

베네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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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여름이 시작되고 햇살이 짙어지는 6월이면 늘 그랬듯 카리브해의 바람과 안데스산맥의 정기가 불현듯 떠올라 만사 제쳐두고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 동경의 나리타공항에서 환승을 해서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시카고의 오헤어(O'hare)국제공항을 거쳐 시애틀상공을 지나 몬타나주로 향한다.


태평양을 지나고 지평선을 덮은 운해가 설원처럼 아름다운 미주리주 대평원을 지난다. 그 사이 여명이 밝아오고 또 해가지고 밤이 왔다. 그렇게 남아메리카의 작은 베니스(LittleVenice)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 공항에 닿았다. 카라카스 공항은 아담한 규모이긴 했지만 진주빛이 나는 금조개를 썰어놓은 자개를 공항 바닥에 붙여놓아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베네수엘라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도시화된 나라로 특히 수도인 카라카스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건물들로 들어차 있었다. 첫날은 카라카스의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백인과 인디오들의 혼혈(메스티조)로 이뤄진 이들의 외모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희지만 검게 그을린 듯한 피부색에 짧고 길든 약간의 웨이브가 있는 머리 모양은 백인들의 밍밍한 외모보다 화려하고 동양인들의 작고 고집스런 얼굴보다 훨씬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이곳 여성들에 관해서는 그렇게후한 점수는 주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는 여러 차례 세계 미인대회에서 최고의 미인을 배출한 나라로 유명하지만 넘쳐나는 눈과 코, 하나같이 큰 엉덩이가 왠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게는 작지만 아담한 눈과 낮지만 정돈되어 있는 코의 동양 여인들이 익숙한 모양이다.


카라카스는 해발 1,000m에 위치한 곳이어서 6월은 계절 중 가장 더운 날씨지만 후덥지근하지 않고 바람이 칼칼해 돌아다니기에 아주 좋다는 것. 그리고 휘발유 값이 싸서 한국 돈으로 5,000원어치 정도면 벤승용차를 4일이나 운행할 수 있어 길에 버리는 돈이 아주 적은 도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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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아티즈(엘마띠오)마을은 식민지 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식민지 유물은 지방에 있어 수도 중심에 남아있는 것은 이곳이 유일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유럽의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큰 데파트 형태의 건물이었다. 건물의 형태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으나 안의 구조를 조금씩 변경하여 베네수엘라 뿐 아니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페루 등의 전통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마을의 전경은 교회와 공원,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독립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 장군 동상이 어우러져 몇백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아티즈 마을을 둘러보고 볼리바르의 생가와 무덤이 있는 카사 나탈 데 볼리바르를 찾았다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최고의 민족적 영웅으로 대접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볼리바르의 생가와 무덤은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볼리바르는 300여년 동안의 식민지 통치에서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5개국을 해방시킨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이다. 볼리바르를 알지 못하고는 라틴 아메리카를 제대로 여행하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남아메리카곳곳에 그를 기념하기 위한 공원이나 기념관이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지명이나 관공서의 이름까지도 볼리바르라 명명하고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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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카라카스는 현대 연극, 영화, 무용,음악, 미술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도시로 스페인 뿐 아니라 주변 해변 국가와 아프리카의 문화가 어우러져 크고 작은 문화 공연이 많았다. 그 날 나는 아프리카에서 유래되어 지금은 카리브해의 주악기가 된 드럼통(tambores)이 연주되는 음악공연과 아름다운 카리브해 여인들의 플라멩고 댄스(flamengo Dance)에 매료돼 시간가는줄 몰랐다.


베네수엘라에서 최종 목적지로 삼은 곳은 앙헬 폭포(Angel Fall)였다. 이 폭포는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폭포로 베네수엘라 남동부 볼리바라주 동쪽에 위치한다. 기아나 고지에서 발원하는 오리노코강의 지 류 카 로 니 강 이 기 아 나 고 지 로 부 터1,490m 높이에서 막힘없이 낙하하여 형성되는 폭포로 979m의 어마한 낙차를 이룬다. 세계 최고의, 그것도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폭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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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도 쉽지 않아 캠프를 직접 하면서 카누를 이용해야 한다기에 아침부터 서둘렀다. 우리 일행은 16인승으로 이뤄진 경비행기를 타고 2시간 이상 몸을 날려 버날 캠프에 도착했다. 먼저 캠프장 주변의 사뽀(Sapo) 폭포를 구경했다. 높지는 않지만 큰 규모였고 폭포 밑으로 바위굴이 있어 신비스러웠다. 물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으며 웅장하진 않지만 물살과 어우러진 광경이 장관을 이뤘다.


캠프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카누에 올랐다. 급류에 몸을 맡기고 물살을 가르며 앙헬 폭포로 향했다. 한번 봐도 알아볼 만큼 꼭 탁자처럼 생긴 테이블산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마법이 펼쳐주는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들이 하나하나 그림처럼 다가왔다. 정글 속 울창한 숲에 어지럽게 엉켜 붙은 초록색의 식물들. 그리고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화려한 빛깔의 꽃들이 매혹적이다. 덩이져 하늘을 뒤덮을 듯한 뭉게구름이 계곡의 끝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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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들의 어울림이 물속에 비쳐 아른거린다. 그리고 펼쳐지는 하얀 안개 밭. 앙헬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계곡을 삼켜 버릴 듯한 어마한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끝도 보이지 않고 하얗게 부서진다. 그것이야말로 하얀 천사의 모습이었다. 캠프로 돌아와 저녁7시에 자리에 누웠다. 이곳에서는 달과 해의 움직임에 따라야 한다. 잠깐 들려왔다 사라지는 동물들의 발자국 소리에 잠을 설친다.


저녁에 닭고기를 요리한 탓에 재규어들의 후각을 자극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재규어를 비롯한 산짐승들이 심심찮게 내려와 사람들을 해치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 자리에 누워 낮에 보았던 앙헬 폭포를 떠올렸다. 앙헬 폭포에 간다는 것은 캠프장에 도착해서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거기다 카누를 타고 3시간 이상 급류를 타야하고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동물과 독버섯, 독꽃과 독풀들, 독개미와도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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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같은 번거로움도 그 아름답고 위대한 광경 앞에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마도 가슴을 열고 기회를 찾는 자만이 자연의 위대함이 안아볼 수 있으리라. 여행의 즐거움 역시 이것과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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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20일 제9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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