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4월 24일

레저/여행

핏빛 내전의 상처 속 신산한 삶




프리타운 시내, 삶의 모습을 따라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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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타운 시내가 가까워지면서 차들이 많아졌다. 명색이 주유소에 주유기가 한대뿐이다. 젊은 남자 서넛이 둘러서서 기름을 넣고 있는데 기름넣는 방법이 특이하다. 옛날에 지하수를 손으로 펌프질해서 끌어올린 것처럼 땅속 기름을 펌프로 올리는 수동식이다.


다른 점이라면 여기선 펌프질을 좌우로 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펌프질을 해서 펌프 위에 부착된 말통으로 기름을 끌어 올리고 그 통이 차면 옆 통으로 옮겨가 호스를 통해 차에 주유를 하는 방식이다.


별다른 용량법이나 계량기도 없이 그냥 한 통에 얼마씩 파는 모양이다. 재래시장이 언제나 정겨운 것은 이들 삶의 모습이 가장 잘 묻어나는 곳이기 때문일 게다. 우기라서 노상 진창인 땅바닥에서 흙탕물에 찌든 낡은 돗자리 한 장 펴놓고 고구마와 당근 같은 작물을 흙도 털지않은 채 더미째 팔고 있다.


그나마 지붕이랍시고 함석이나 비닐이라도 쒸운 점포는 나름 상점의 모습을 갖춘 셈이지만 그마저도 없는 곳은 진창 위가 바로 가게다. 세계에서 못 살기로 5위 안에 들어간다는 말이실감난다.


부인네들이 아무 데서나 웃통을 다 벗고 빨래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뛴다. 여기서는 일상적인 일인 것 같은데, 그러고보니 구한말 우리민족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에서도 저고릿단 사이로 젖가슴을 드러낸 채일하는 여성들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아프리카에서의 그런 모습도 우리의 옛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생명이 시작된땅 아프리카니까. 낡은 재봉틀이 전 재산인 옷가게도 있고, 핸드폰 충전을 해주는 가게도 보인다. 한쪽에선 머리카락을 땋아주고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흑인들 특유의 엄청난 곱슬머리는 조금만 길어도 두피를 파고드는 탓에 꼬지 않으면 참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머리를 꼬아놓으면 마음대로 감지를 못하니 냄새가 나면 열흘이나 보름마다 풀고 다시 머리를 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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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하고 신산한 생활,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프리타운 숙소에서 맞이한 아침. 숙소창밖으로 잔잔한 대서양이 보이고, 대서양의 뱃길을 밝히는 등대가 외로이 서 있다. 그런데 평화로운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객실 창밖은 온통 철조망 투성이다. 예상치 못한 곳에 때아닌 철조망이 있는 까닭은 바로 도둑방지용이었다.


숙소 가까이 있는 마을공동묘지를 둘러보니 따로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지 무덤주위에 잡초가 무성하고 어느 집 염소 한 마리가 무덤가의 잡초를 뜯어먹고 있다. 괜찮게 만든 무덤도 있지만 무덤의 흔적은 사라지고 묘비만 덜렁 남은 것도 있다.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에 망자를 위해 쓸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도로가를 따라 길게 줄을 늘어섰다. 원래는 버스정류장도 없었는데 코로마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면서 버스승강장도 만들고 버스노선도 정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기막힌 모습이 있었으니 바로 트럭에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다.


큰 트레일러에 짐 대신사람들이 가득 찼다. 따로 비용을 받는지 물어보았더니 그냥 방향이 같으면 태우고 가는 것이라고 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50명 가까운 사람을 안전장치도 없는 트레일러 뒷칸에 싣고 달리는데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간 이색적이지 않다.


시청앞 공터에는 한 무리의 장애인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 다리에 장애가 있고 간혹 팔다리가 절단된 사람도 보인다. 장애인이라서 카메라를 많이 꺼릴 것 같았으나 오히려 일반이보다 우호적이다. 몸은 힘들겠지만 마음은 더 여유로워 보인다. 이들의 대부분이 내전으로 장애를 입게 된 사람들인 것이다. 시에라리온 내전은 ‘살육과 광기’의 전쟁으로 세계적인 악명을 얻었다. 아직도 도심 곳곳에는 팔목과 다리가 잘린 사람들이 구걸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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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약속의 다이아몬드, 그 핏빛 그림자


아프리카에서 내전을 겪은 나라가 시에라리온 하나뿐이 아니건만 이곳의 참상은 유독 잔혹하다. 유난히 손목이나 발목을 ‘잘린’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전쟁에 참여한 피아간의 일이 아니라 전쟁과 무관한 일반인이 말이다. 더구나 그 끔찍한 짓을 행한 자들이 12~18세에 이르는 소년들이었다는 사실을 접하면 절로 모골이 송연해질 수밖에 없다.


시에라리온 반군은 마을을 약탈하면서 남자들의 손발을 잘랐는데 그 이유가 그 발로 걸어가 그 손으로 현 정부에 투표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이웃 라이베리아를 거점삼아 1991년 시에라리온 동부를 공격하여 한 달만에 다이아몬드 광산지역인 이스턴주를 장악했다. 다이아몬드는 이들에게 무기구입과 정보를 위한 외부지원을 얻는 수단이었지만 곧 다이아몬드 자체가 목적으로 변질되어 피의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살육과 광기의 전쟁’으로 악명 떨친 시에라리온 내전


91년부터 11년간 지속된 내전은 ‘살육과 광기’의 전쟁으로 기록되었는데 그중 가장 끔찍한 것이 바로 소년병문제였다. 소년병은 보통 12~17세 정도인데 반군에게 부모를 살해당하고 끌려가거나 혹은 납치당한 경우, 또는 정부군에 징집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두 진영 모두 소년들에게 서로를 죽여야 할 철천지원수로 각인시키고 마약을 먹여 전쟁터로 내몰았다. 무감각한 살인기계가 된 어린이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성폭행을 자행했으며 잔인하게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팔다리를 잘랐다.


전쟁이 끝난 후 시에라리온에 남은 것은 가난과 갈등, 공포뿐. 내전종료 십수 년이지난 지금도 혼란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프리타운 근처 난민수용소는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전쟁으로 깊이 상처받은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그득하다.


특히 소년병으로 활동했던 아이들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가되었다. 그들이 자기가 살던 마을 주변에서 주로 활동한 탓에 그 만행을 기억하는 고향에서 그들을 받아줄 리 만무하다. 하여 내전이 종식되자 4천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손과 발을 절단당했고 20만명이 사망했으며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백만명이 난민이 되었다.


평균수명이 가장 짧은 나라, 전쟁이 끝나고 아직도 일인당GDP가 1,400달러로 세계 208번째(2013년기준)에 발과한 가난한 나라. 현재 시에라리온은 내전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중이다. 시에라리온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도약할 수 있을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갈 길이 아직멀긴 하겠지만 이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찾아올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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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027일 제9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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