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4월 24일

레저/여행

다이아몬드의 핏빛 그림자 아래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아프리카는 해외여행이 일상화된 지금도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케냐 등 남부아프리카처럼 관광상품이 개발된 곳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중부나 서부아프리카는 일반인이 관광목적으로 여행하는 건 더욱 쉽지 않다.

관광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서 비자발급이나 항공편, 숙박 등 모든 것에 제약이 많다. 비자만 해도 그렇다. 중앙아프리카의 경우 대부분 국내에 대사관이 없어 프랑스나 중국을 통해야 하는 데다 그나마 제출서류도 많고 까다로워서 여간해서는 비자를 받으리란 보장도 없다.

 

이번 시에라리온 일정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나이지리아로 갈 예정이었는데 현지에서 합류하기로 한 코이카의 정상훈 소장이 시에라리온으로 출장을 가면서 내 목적지도 갑자기 시에라리온으로 변경되었다.

시에라리온 비자도 없고, 비자를 발급받기엔 시간도 부족했다. 정소장이 현지 비자를 신청해놓았다고 하지만 아직 발급확정이 되지 않은 상황. 자칫 발급이 거절되면 시에라리온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나이지리아 입국 때까지 일주일 정도를 비행장에서 체류해야 할 판이었다.

 

오지를 여행하며 얻은 경험으로 미루어 이럴 때는 감을 믿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고는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보통 아프리카로 가는 항공은 남아공이나 케냐, 에티오피아를 경유하면 요금이 저렴하지만 갑자기 일정을 변경한 탓에 런던을 경유하는 항공을 갑절이나 비싸게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런던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8시간. 런던까지 12시간이나 걸려 도착했지만 아직 시에라리온 비자가 나왔는지는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리던 중 출발 두 시간 전에야 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야 조바심으로 애태우던 마음을 떨치고 시에라리온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시에라리온은 ‘사자의 산(山)’ 기원전 500년경부터 원주민 거주
노예들의 이주와 정착 도운 가슴따듯한 사람들…이방인에 호의적

 

시에라리온Sierra Leon의 시에라는 , 리온은 사자를 뜻한다. ‘사자의 산을 뜻하는 이 이름은 1462년 이곳을 최초로 탐험한 포르투갈 사람이 천둥소리가 마치 사자의 포효 같다고 해서 자기네 말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최소한 기원전 500년경부터 원주민이 거주했고 이후 여러 부족이 이동해왔다. 현재 시에라리온에는 18개의 원주민 종족이 있는데 동부와 남부를 차지하고 있는 멘데족이 제일 큰 집단으로, 전체인구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그리고 북부의 템네족과 림바족이 전체인구의 약 2/5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들 원주민 종족 외에 크리오 또는 크리올족이라 부르는 외부유입공동체가 있으니 그들이 바로 1787년 신설된 프리타운에 집단정착한 해방노예와 그들의 후손이다. 내전이 종식된 2000년대까지 끊이지 않는 원주민과 크리올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이로부터 싹튼 것이다.

 

포르투갈을 좇아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이 지역에 가세하며 시에라리온은 15세기 대서양 횡단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대영제국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노예무역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16~17세기 동안 영국이 2백만의 흑인들을 미국의 캐롤라이나주와 조지아주 등지에 노예로 팔아넘겨 벌어들인 돈이 국가수입의 1/3을 차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787년 노예폐지론자와 박애주의자들이 시에라리온강 하구의 남쪽지역에서 탈출노예와 해방노예들의 이주와 정착을 도와주며 현재 프리타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영국령 서아프리카의 행정중심지가 된 프리타운은 1827년에는 서아프리카 최초의 서양식 대학인 푸라베이대학Fourah Bay College이 설립되어 명실상부한 서아프리카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내 어린시절 우리네 삶처럼 그들도

 

프리타운 룽기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이 새벽 530. 이곳에서 배를 타고 40분 정도 들어가야 시내로 갈 수 있다. 프리타운은 시에라리온의 수도이자 대서양에 면한 항구도시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큰 자연항구다.

공항과시내를연결하는보트.JPG

 

항 앞에는 보트승강장으로 이동하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새벽이라 주변은 한적하고 어둠에 가려 주위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공항 안에서도 달리는 내내 버스가 심하게 요동칠 정도로 도로는 여기저기 움푹 파이고 심한 곳은 바퀴가 빠질 만큼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어디를 가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장터엔 새벽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공항도 그랬지만 일반도로 사정은 더 열악하다. 새벽이라 차량이 많지 않은데도 움푹 파인 길 때문에 버스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우리를 시내로 데려다줄 보트는 20~30명 정원의 작은 배다. 유럽에서 온 듯한 백인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좌석에 앉았고, 우리를 포함한 현지인들은 조끼 없이 그냥 탑승했다. 생각보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 배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선착장으로 사람들을 토해냈다.

 

선착장에서 가까운 워털루 시장은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아프리카는 위험한 곳이라는 우려도 많지만 어디든 선량한 사람들도 많은 법. 낯선 동양인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걸 꺼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히려 즐기는 사람도 많다.

 

아프리카의 재래시장에서는 도무지 진창길을 벗어날 수 없다. 10년 전, 20년 전 모습과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다 쓰러져 가는 함석집 구멍가게 머리에 간판이랍시고 올려놓은 것은 나무판에 페인트로 글씨를 써놓은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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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구멍가게 간판에 적힌 이름이 엔터프라이즈이고 보니 주인장의 배포에 웃음이 난다. 농산물이 도매로 거래되는 곳인지 고추와 이름 모를 채소들을 커다란 꾸러미로 묶어 팔고 있다. 여기저기서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많으면 차 지붕에 싣고.... 왁자지껄 북적북적한 장터풍경이 활기차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나무를 해서 쌓아놓은 게 있어 물어보니 땔감으로 팔려고 내어놓은 것이란다. 어른 허리통만한 크기로 네 묶음에 우리 돈 450원 정도. 근처로 가보니 벽돌담에 초가지붕을 올린 원주민들 마을이 나온다.

주인으로 보이는 여인은 웃통을 벗고 젖가슴을 내놓은 채 별 부끄러움 없이 빨래를 하고 막내딸로 보이는 십대처자는 절구통에 쌀을 찧고 있다. 할머니와 아들, 세 딸, 그리고 손녀까지 작은 식구는 아닌 듯하다. 평생동반자라는 개념이 없는 곳이라 이 남자 저 남자에게서 낳은 아이들을 데라고 살고 있어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기가 어색하다.

내전도 잊게하는 순박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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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옛날 우리 시골에서 보던 모습과 똑같다. 절구를 찧는 모습도, 대장장이처럼 칼을 가는 것도 그렇다. 칼을 그냥 숫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칼날을 쇠줄로 갈고 집 안에 피운 모닥불에 달궈 우그러진 부분을 망치로 두들기고, 문앞을 흘러가는 빗물에 달궈진 칼을 식힌다. 규모는 비할 바 아니지만 방식은 옛날 우리 대장간과 퍽 흡사하다.

 

전형적인 시골농가인 듯 줄에 묶어놓은 염소 몇 마리가 보이고 닭과 오리는 풀어놓고 키운다. 이웃집 어린애는 카메라가 낯선지 얼굴을 마주치자 쪼로록 도망가버린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지 바닥에 돌덩이 세 개로 만들어놓은 아궁이엔 냄비가 얹혀 있다.

 

이곳은 바다가 가까워 어부들이 주로 사는 마을이라고 한다. 지금이 우기라서 비가 수시로 내리기는 하지만 워낙 물이 부족한 탓에 사람들은 오히려 비가 오는 것을 반긴다. 물이 없을 땐 며칠씩 씻지도 못하다가 비 온 김에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한다. 동네여인들 몇몇이 모여 삽을 들고 머리에 바구니를 인 채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간다.

 

시에라리온과의 첫 만남은 내전도 갈등도 아닌 어릴 적 힘들게 살았던 내 모습이다. 모든 게 낡고 허름한 시절이었지만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고 이뤄가던 시절. 지금 이곳도 그때 그곳처럼 아직은 어렵고 힘들지만, 정작 아이들은 그때 우리처럼 웃음을 잃지도 않았고, 때도 묻지 않은 순박한 모습이다. 파괴와 살상만 가득했던 내전의 그림자는 적어도 이 아이들의 웃음 속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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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922일 제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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