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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무용/뮤지컬

여성선각자 나혜석… 국내 최초 시극으로 만나다

 
2011부산해양문학제 해양문학의 밤 무대 올라
 

100년의 앞선 시대를 살다간 최초의 여성서양화가이자 칼럼리스트, 소설가였던 나혜석을 시극으로 만났다. 2011한국해양문학제가 열린 지난 3일 오후 6시 부산예술회관 공연장. 무대위에서 되살아난 115년전 그녀의 삶에 1시간여 객석은 울고 웃으며 열광했다.
 
시대가 용납할 수 없었던 한 여성의 로맨티스트다운 삶에 대해 역사는 어떠한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인가. 일제강점기 의지있는 여성으로서 살아가기에 벅찬 시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의지로 꿋꿋이 이끌어간 한 여성선각자의 삶에 대한 재평가가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나혜석의 유명세는 나혜석과 그의 남자들에 한했고, 그 좁은 폭안에서 그녀의 삶이 조명되어왔다. 그러나 이번 나혜석 시극 무대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그녀의 진정하고도 다양한 내면의 세계를 그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사실 나혜석은 화가이자 문인으로서의 예술가, 네 아이를 둔 어머니, 알뜰한 아내, 며느리로서 삶도 살았지만 나라를 위한 열정과 용기로 3.1운동에 연류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5개월간 구금되기도 한 애국자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미 1920년대 초 현대적인 최초의 여성칼럼니스트로 여성의 권익과 시대의 잘못된 관습을 지적하고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진 문화를 걱정하며 강원도의 자연입지를 살려 세계인들을 받아들여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해야한다고 역설한 바도 있다.
 
지금에야 돌이켜보면 요즘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부상하면서 세계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그 강원도에 대한 혜안이 뻔득이는 논지였음을 누가 부인할까. 의복개량, 학생교육자율화, 시험결혼과 계약결혼, 미혼모 복지시설 등을 요구하기도 한 그는 분명 시대를 앞서 살아간 선각자임에 틀림없다.
 
그런 나혜석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공감하기에 충분한 시극(연출 자유바다 정경환 연출가) 나혜석 무대는 부산문인협회(회장 정영자)와 한국해양문학제운영위원회 (위원장 정영자)가 마련한 해양문학의 밤행사를 통해 제대로 조명됐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정영자 회장이 시극 시나리오를 쓰고 순 다양한 장르의 문인들로 구성된 '물소리극단' 출연자들이 연극에 참여한 국내 최초의 시극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단원들의 평균연령은 60세가 넘는 여성들이다.주인공 나혜석역을 맡아 열연한 박진희씨, 나혜석의 남편 김우영역에는 정은하씨,최승구 역에 이상미씨, 파리샹송가수역에 전연희씨, 최린역에 손순이씨, 나경석의 처역에 김순자, 나경석에 김새록씨, 나혜석의 시누이역에 김윤선씨, 나까무라역에 김수민씨, 김일엽 역에 류춘자씨, 이광수 역에 송소현 씨 등 아무추 어들로 구성돼 다소 연기에 서툴기도 했지만, 진지한 연기몰입과 대사의 충분한 소화로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대본 중간중간 등장하는 시어 낭송은 극을 품격있게 만들었고, 상황을 시로 노래한 대사는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시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이해하는 문인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대사도 시극의 묘미를 더했다.
 
 
정영자 회장은 "나혜석은 여성도 자기소유의 욕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고 현모양처형 여성에 대해 반기를 든 신여성이면서도 여성교육과 새로운 운명을 개척할 여성의 권리를 주창했으며,여성이 변해야 세상이 바뀔 수 있음을 강조한 여성운동가였다"며 "그동안 그를 단지 신여성으로만 지칭해온 수식어는 미흡하다"고 말했다.
 
한편 시극에 참여한 단원들은 "나혜석 공연에 충실하기 위해 수원의 나혜석 거리를 찾고 그녀의 발자취를 쫓아 3년간 머물던 수덕사에도 다녀왔으며, 나혜석 바로알기 강좌와 책으로 엮기도 했다"며 그동안의 노고를 털어놨다.
 
이번 부산문인협회 물소리 극단의 시극활동은 올해로 3년차다. 그동안  연오랑과 세오녀』(2009)『, 헌화가』(2010)등을 무대에 올렸으며 앵콜 공연도 여러 번 가진 바 있다.
 
▷나혜석 그녀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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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은 1896년에 태어나 1949년에 세상을 떠난 여인이다. 지금으로부터115년 전에 태어나 만 16세의 나이에 <이상적 부인>을 발표했다. 100년 전 그녀가 살아간 시대는 일제강점의 시기로, 의지 있는 여성으로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의지로 꿋꿋이 이끌어 가고자 하였다.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배우고 누리며 살았고 외교관 남편을 만나 충분히 향유하며 편안한 결혼 생활로 매너리즘에 빠졌을 만도 한데 그녀는 예술가, 어머니, 아내, 지인들과의 관계, 나라를 위하는 일에서도 열정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3·1운동에도 연류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5개월 동안 구금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결혼 청첩장을 신문에 발표하고, 신혼여행을 옛 애인의 무덤으로 찾아가서 석비를 세우게 하며, 결혼 생활 내내 작가로서, 화가로서 활동하고, 1년 6개월에 걸친 세계여행을 다녀온 후 구미여행기와 이혼고백서를 잡지에 연재하는 등 새로운 시대의 창의적인 생각을 발표한 지성, 감성을 공유한 용기 있는 여성이었다.
 
 
유순희 기자
[2011년 8월 18일 22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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